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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나의 일기장.

07.12.

apr24 2020. 7. 3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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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시작된 두통, 이제는 초점이 맞지 않는 두 눈, 점점 흐트러지는 걸음걸이, 서서히 딱딱하게 굳어가는 혀, 무엇보다 부정확해지는 발음. 오랫동안 엄마를 돌봐왔던 정신과의는, 내가 겪고 있는 불편에 대해서 전형적인 뇌졸중의 전조증상을 우려해서, 인근의 신경과목의 진료가 가능한 대학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참아보기로 했다.

12일,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두통. 마치, 머리가 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파왔다. 순간, 나의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는 바로 '뇌졸중'이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는 엄마가 잠든 방으로 찾아갔다. 아마도, 고통 속에서 밤새 성경책을 써 내려가다가 잠든 엄마. 차마, 나는 엄마를 깨울 수 없어서, 성경책에 꽂혀 있던 볼펜을 꺼내서는, 나의 몸에 하고 싶은 말들을 써 내려갔다. 어쩌면,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동안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써내려갔다.

점점 심해지는 통증, 더는 어떻게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스스로 구급차를 불렀고,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인근의 뇌수술이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줄 것을 부탁했다.

약 5분여의 걸친 1차 뇌 MRI 결과, 다행히 출혈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오후, 30분여에 걸쳐서 다시 한번 진행된 뇌 MRI 결과, 당일 응급실의 당직이었던 신경과 교수는 나에게 다소 생소한 병명의 병을 판정해 주었다.

'베르니케뇌병증'

오랫동안 마셔왔던 술 때문에 뇌에 충분한 비타민의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런 병이 찾아온 것이라는 설명. 어찌 되었든, 신경과 교수는 나에게 멀티 비타민과 티아민의 정맥 주사를 처방해 주면서 약 일주일 정도의 입원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부담스러운 병원비를 어떻게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약속했던 비타민 주사를 먼저 맞게 된 나는, 떨어지는 눈물을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구급차를 불렀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서울시를 통해서 공공 일자리, 통·번역의 일이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까막눈이 되어 버린 한자와 비즈니스 경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점점 지쳐가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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