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중반의 선고로부터 약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길어지는 항암치료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엄마는 조용히 내 머리를 끌어안고 부탁했다. "오늘부터 우리 둘만의 비밀." 병원이 선고한 여명이 끝난 지금, 엄마와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온 과거들이기도 하고, 어쩌면 앞으로의 미래들이기도 하다. 어째서 우리 엄마에게 이런 나쁜 병이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엄마에게 새로운 생명이 선물 된다면...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제발 다시 한번 태어나는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눈물로 기도할 뿐이다.
작은 손으로 빚어낸 너무 예쁜 한 그릇의 어묵탕, 입안 가득 은은한 바다향이 가득 퍼진다. 나는 이 맛을 영원히 기억해 둘 것이다. 앞으로는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할 음식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엄마는 옷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한껏, 부풀어 오른 팔로 모두의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4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너무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보여주고 있는 엄마. 마지막까지, 엄마는 자신의 소임을 다 하고 있다. 엄마를 잊을 수 있을까. 서른여덟 해, 군대에 간 며칠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병원이 선고한 여명을 초월한 엄마. 나는 엄마에게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제발, 엄마도 다시 일어나는 기적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져..
병이 찾아오고 나서는, 입버릇처럼 짐을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 그런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중간 방의 짐을 하나 가득 내다 버렸다. 그릇, 냄비, 시계, 온갖 잡동사니가 죄다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곧 다시 그 짐을 집으로 갖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엄마는 내다 버리려고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모두 다시 집으로 갖고 돌아온 것이다.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의 엄마는, 오늘도 물건들에 하나씩 의미를 달아주고 있다. 결국, 우리 집의 물건들은 모두, 하나하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모두 의미를 갖고 있어서 쉽게 내다 버릴 수 없는, 쫓아낼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그렇다. 모두, 엄마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인 것이다. 나는 지친 엄마를 침상에 눕혀 ..
암과의 동행을 시작한 엄마. 어찌 된 일인지 엄마는 암마저도 자신의 친구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엄마는 항암의 고통 외에는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잠든 엄마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온몸 곳곳에는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주로 원발 암 쪽의 어깨, 척추, 골반 등, 혼자서 붙이기도 힘든 곳의 파스가 눈에 띄었다. 어째서 엄마는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엄마는 늘 아프다는 것을 아프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이미 병원에서 선고한 여명, 엄마의 생물학적 시계는 멈추었다. 항암제는 낫게 해 주는 약이 아니다. 서서히 죽어가도록 도와주는 약이다.
심각한 림프 부종으로 팔을 접었다 펴는 것도 힘들어하는 엄마는 오늘도 같은 말만 반복했다. "괜찮다." 이제는 늘 같은 말만 반복해 오던 엄마의 체력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진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 엄마는 한동안 망설이는 눈치였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갈까."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뚱뒤뚱 꽃게처럼 옆으로 한 걸음씩을 내디뎌서 아슬아슬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한없는 눈물을 쏟았다. 이 작은 소원 하나를 들어줄 수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주치의께서는 첫 내원 당시의 여명을 약 반년으로, 항암이 잘 진행되던 때는 길어야 최대한 1년 반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씀하셨다. 항암으로 약 23개월째, 엄마는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