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정은, 단순히 뼈주사(졸레닉) 한 대뿐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다지 평소보다 엄마를 많이 데리고 다닌 것도 아니지만, 몸이 많이 피로하다. 술 때문인지, 이버멕틴 때문인지, 정확히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종아리, 장딴지가 올라가는 근육통에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한낮까지도 늦은 잠을 청해야 했다. 그밖에 피곤함과는 별도로, 손등과 발등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고 있다. 이제, 엄마에게 주어진 여명이 끝났다. 엄마가 체력을 아낄 수 있도록 일을 덜어주어야 한다. 평생, 엄마에게 에어컨 한 번을 켜줄 수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다. 여름을 알리는 더위, 폭염의 시작에 눈물이 흐른다. 어서 일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도저히 워크넷만으로는 일을 구할 수 없다. 새삼, 그 많았던 인간관계 역시..
서른여덟, 나는 꼭 지금의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해 온 친구. 늦은 결혼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김포의 양말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그는, 이제는 본격적으로 섬유 산업으로 뛰어들어서, 지금은 역삼동 소재의 모자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나는 그의 카카오스토리에서 베트남 출장의 기록을 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국의 풍광과 먹거리를 담은 사진, 즐거워 보이는 그의 이국에서의 일상을 훔쳐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가끔씩 보내오는 알 수 없는 베트남어의 인사에 마냥 웃음밖에 안 나온다. 역시나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해 온 친구. 20대초부터 할아버지의 음식점을 물려받아서 장사를 시작했던 그는..
매일 한 컵의 소주로 하루의 시름을 달래던 엄마는 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서는 자신의 등과 허리 등에 파스를 붙여 달라고 했다. 2018년의 5월, 갑자기 엄마가 사라져 버렸다. 약 일주일여만에 나타난 엄마의 몸이 이상했다. 분명히 겨드랑이 쪽에 참외 한 알만한 무엇이 보였다.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안방에 들어간 엄마는 조용히 병원에서 갖고 온 책자를 꺼내놓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손에서 책자를 빼앗았다. 암센터에서 준 책자였다. 엄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암이라고..." 곧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엄마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세상에 나와서 눈물이 말라버렸다고 했던 엄마, 그날, 나는 오랜만에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늦었지만, 엄마에게 경..
갑작스럽게 목사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꼭 단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지금 당장 교회 2층의 목양실로 찾아와 달라는 부탁.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목양실, 목사님과의 일대일 면담. 나는 엄마의 상태를 묻는 목사님께 솔직히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병원이 선고한 여명은 최대한 길어야 1년 반이지만, 예상보다는 더욱 오래 살아계시고 계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밀실에서, 목사님께서는 나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어 오셨다. 상상외의 돈이 담겨있어서 놀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쏟아지는 눈물을 어떻게도 할 수 없어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엄마가 세상에 뿌린 씨앗이 피어나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어머니를 통해서 맺어진 인..
내 서른 여덟 번째의 생일. 어서 엄마가 나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적으로, 내 서른 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뱃속에서 10개월, 그리고 세상밖으로 나와서 서른 여덟해,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지 모르겠다. 어서 건축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오래 할 수 있고, 안정적인 내 사업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제 나이에 쫓긴다. 엄마의 작은 몸이 항암에 잘 견디어 주는 모습이, 내게는 가장 큰 감동이고,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