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병이 찾아오고 나서는, 입버릇처럼 짐을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 그런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중간 방의 짐을 하나 가득 내다 버렸다. 그릇, 냄비, 시계, 온갖 잡동사니가 죄다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곧 다시 그 짐을 집으로 갖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엄마는 내다 버리려고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모두 다시 집으로 갖고 돌아온 것이다.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의 엄마는, 오늘도 물건들에 하나씩 의미를 달아주고 있다. 결국, 우리 집의 물건들은 모두, 하나하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모두 의미를 갖고 있어서 쉽게 내다 버릴 수 없는, 쫓아낼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그렇다. 모두, 엄마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인 것이다. 나는 지친 엄마를 침상에 눕혀 놓고, 엄마의 추억들을 다시 집으로 갖고 돌아왔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하루에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엄마는 내일도 추억들을 내다 버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추억들을 집으로 갖고 들어올 것이다.
처음, 주치의로부터 선고받은 여명은, 최대한 길어야 1년 6개월. 하지만, 엄마는 주치의께서 선고한 여명을 뛰어넘어서 아직도 생존해 있다. 입랜스와 페마라 6 사이클, AC 8차, 그리고 지금 엄마는 아피니토와 아로마신으로 여명을 이어가고 있다. 약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주치의께서는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완곡한 표현과 함께 앞으로 10년을 더 살 확률을 10%로 엄마의 여명을 수정해 주셨다. 아마도 유방암 4기 환자들의 평균 생존률을 언급하신 것 같다.
'엄마, 그리고 나의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12. (0) | 2020.05.12 |
---|---|
05.05. (0) | 2020.05.05 |
05.03. (0) | 2020.05.03 |
05.02. (0) | 2020.05.02 |
이버멕틴, 복용량과 복용법. (0) | 2020.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