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른 여덟 번째의 생일. 어서 엄마가 나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적으로, 내 서른 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뱃속에서 10개월, 그리고 세상밖으로 나와서 서른 여덟해,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지 모르겠다. 어서 건축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오래 할 수 있고, 안정적인 내 사업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제 나이에 쫓긴다. 엄마의 작은 몸이 항암에 잘 견디어 주는 모습이, 내게는 가장 큰 감동이고, 선물이다.
심각한 림프 부종으로 팔을 접었다 펴는 것도 힘들어하는 엄마는 오늘도 같은 말만 반복했다. "괜찮다." 이제는 늘 같은 말만 반복해 오던 엄마의 체력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진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 엄마는 한동안 망설이는 눈치였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갈까."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뚱뒤뚱 꽃게처럼 옆으로 한 걸음씩을 내디뎌서 아슬아슬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한없는 눈물을 쏟았다. 이 작은 소원 하나를 들어줄 수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주치의께서는 첫 내원 당시의 여명을 약 반년으로, 항암이 잘 진행되던 때는 길어야 최대한 1년 반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씀하셨다. 항암으로 약 23개월째, 엄마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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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항암, 점점 지쳐가는 엄마와 나. 우연히 들른 어느 카페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이가 먼저 채팅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는 다짜고짜 나에게 집의 주소를 물었다. 익일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꼬깃꼬깃 정성스럽게 신문으로 감싼 포장과 함께 이버멕틴, 메벤다졸, 알로홀, 사탕이 담겨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베푸는 인정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그의 주소가 적힌 택배 상자를 고이 간직해 두고 있다. 어서 일을 구해야 할 것 같다. 갚아야 할 마음의 빗이 가득 쌓이고 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에게 찾아온 병으로 세상이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하던 때도 있었다. 오랜 항암으로 지치기 시작하던 때는 모두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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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로 원발 암이 터져나가서 한쪽 팔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엄마, 그런 불편한 몸의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복작거리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하나'를 만들어냈다. 바로 토스트라고 보기도, 샌드위치라고 보기도 힘든 '그것'이다. 아주 적절한 재료의 선택, 아마도 계란, 참치, 마요네즈, 양파, 당근 등의 속 재료가 들어간, 냉장고를 옮겨 닮은 '그 맛'이다. 아주 맛있다.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어서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그 맛이기 때문에, 돈을 내고도 살 수도 없는 '그 맛'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냉장고 맛'이 아니다. 그 맛이다. 나는 한입에 다 털어먹은 반면, 조금씩 오물조물거리던 엄마는 이내 한마디를 내뱉었다. "맵다." 오랜 항암으로 맵다, 달다, 짜다, 시다, 쓰다, 등의 기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