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절박하게 다른 직종의 문을 두들겨 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오늘도 이곳저곳에 문자를 보내보고, 업무적으로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쉽지 않다. 정말, 어떻게 이 난관을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노동부에서 진행하는 국비지원무료교육과정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직업훈련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것이라도 다시 수련해서 이력서에 새로운 경력 한 줄을 첨부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건축 산업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버멕틴의 항암 효과가 사실이라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늘어날지 모른다. 다시 새로운 직업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동네 정육점의 할아버지 한 사람, 외에는 모두 나의 이직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눈물로, 마..
서른여덟, 나는 꼭 지금의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해 온 친구. 늦은 결혼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김포의 양말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그는, 이제는 본격적으로 섬유 산업으로 뛰어들어서, 지금은 역삼동 소재의 모자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나는 그의 카카오스토리에서 베트남 출장의 기록을 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국의 풍광과 먹거리를 담은 사진, 즐거워 보이는 그의 이국에서의 일상을 훔쳐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가끔씩 보내오는 알 수 없는 베트남어의 인사에 마냥 웃음밖에 안 나온다. 역시나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해 온 친구. 20대초부터 할아버지의 음식점을 물려받아서 장사를 시작했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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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러 먼 시장에 나갔다가 발견했다. 오비 필굿, 아무리 발포주라고 하지만, 너무 싸서 내 눈을 의심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가격이었다. 과연, 언제까지 행사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가격을 보고 덥석 집어 들었고, 갖고 나간 핸드 카트에 하나 가득 실었다. 제법 집에서 먼 거리에 위치한 시장의 마트에서 진행되는 행사라서 자주 올 수는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장보기를 포기한 나는 핸드카드에 오비 필굿만을 하나 가득 실었다. 장을 보러 가서 욕망을 하나 가득 품어왔다. 그렇게 나의 욕심으로 오늘의 장을 마친 나는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가장 아끼는 스텐리 진공 파인트 잔에 오비 필굿을 따라서 마셨다. 석잔, 그리고 반 잔 정도가 더 나오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술의 맛을 모른다. 나에..
병이 찾아오고 나서는, 입버릇처럼 짐을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 그런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중간 방의 짐을 하나 가득 내다 버렸다. 그릇, 냄비, 시계, 온갖 잡동사니가 죄다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곧 다시 그 짐을 집으로 갖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엄마는 내다 버리려고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모두 다시 집으로 갖고 돌아온 것이다.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의 엄마는, 오늘도 물건들에 하나씩 의미를 달아주고 있다. 결국, 우리 집의 물건들은 모두, 하나하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모두 의미를 갖고 있어서 쉽게 내다 버릴 수 없는, 쫓아낼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그렇다. 모두, 엄마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인 것이다. 나는 지친 엄마를 침상에 눕혀 ..
아침부터 부산을 떨기 시작한 엄마는, 언제나처럼 깨끗하게 씻고, 언제나처럼 소박하게 차려입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를 앞세워서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 도착한 엄마는 나에게 지금 교회의 형편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목사님께서 자신에게 보내온 돈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내심, 추측하기에 엄마는 언젠가는 다시 갚아야 하는 마음의 빚이 점점 쌓여가서 괴로워했던 것 같다. 엄마와 나, 우리는 목사님께 받은 그 봉투 안의 돈을, 그대로 고이 다시 새 봉투에 옮겨 담았고, 감사의 말씀과 함께 헌금함으로 밀어 넣었다. 오랜 항암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엄마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오래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헌금과 기도를 마치고, 곧바로 엄마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엄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