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절박하게 다른 직종의 문을 두들겨 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오늘도 이곳저곳에 문자를 보내보고, 업무적으로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쉽지 않다. 정말, 어떻게 이 난관을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노동부에서 진행하는 국비지원무료교육과정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직업훈련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것이라도 다시 수련해서 이력서에 새로운 경력 한 줄을 첨부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건축 산업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버멕틴의 항암 효과가 사실이라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늘어날지 모른다. 다시 새로운 직업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동네 정육점의 할아버지 한 사람, 외에는 모두 나의 이직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눈물로, 마..
병이 찾아오고 나서는, 입버릇처럼 짐을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 그런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중간 방의 짐을 하나 가득 내다 버렸다. 그릇, 냄비, 시계, 온갖 잡동사니가 죄다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곧 다시 그 짐을 집으로 갖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엄마는 내다 버리려고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모두 다시 집으로 갖고 돌아온 것이다.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의 엄마는, 오늘도 물건들에 하나씩 의미를 달아주고 있다. 결국, 우리 집의 물건들은 모두, 하나하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모두 의미를 갖고 있어서 쉽게 내다 버릴 수 없는, 쫓아낼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그렇다. 모두, 엄마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인 것이다. 나는 지친 엄마를 침상에 눕혀 ..
아침부터 부산을 떨기 시작한 엄마는, 언제나처럼 깨끗하게 씻고, 언제나처럼 소박하게 차려입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를 앞세워서 교회로 향했다. 교회에 도착한 엄마는 나에게 지금 교회의 형편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목사님께서 자신에게 보내온 돈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내심, 추측하기에 엄마는 언젠가는 다시 갚아야 하는 마음의 빚이 점점 쌓여가서 괴로워했던 것 같다. 엄마와 나, 우리는 목사님께 받은 그 봉투 안의 돈을, 그대로 고이 다시 새 봉투에 옮겨 담았고, 감사의 말씀과 함께 헌금함으로 밀어 넣었다. 오랜 항암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엄마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 오래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헌금과 기도를 마치고, 곧바로 엄마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엄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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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항암의 부작용인 부종으로 이제는 한쪽 팔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엄마. 그런 엄마가 끓여준 한 그릇. 엄마를 닮은 소박한 한 그릇의 국수 한 사발. 그 따듯한 국수 한 사발에 고명을 대신해서 얹은 빨간 다대기가 일품이었다. 국수의 맛을 알고, 다대기의 맛을 알고, 엄마의 손맛을 알고, 인생의 맛을 알기까지, 약 40회가 지나온 것 같다. 머리를 사발에 박고 먹는, 이 한 그릇의 국수에 배가 부르고, 가슴이 녹아내렸다. 유방암 4기, 우리 엄마에게도 폐암 4기, 김한길과 같은 기적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암과의 동행을 시작한 엄마. 어찌 된 일인지 엄마는 암마저도 자신의 친구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엄마는 항암의 고통 외에는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조용히 잠든 엄마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온몸 곳곳에는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주로 원발 암 쪽의 어깨, 척추, 골반 등, 혼자서 붙이기도 힘든 곳의 파스가 눈에 띄었다. 어째서 엄마는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것일까. 어째서 엄마는 늘 아프다는 것을 아프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이미 병원에서 선고한 여명, 엄마의 생물학적 시계는 멈추었다. 항암제는 낫게 해 주는 약이 아니다. 서서히 죽어가도록 도와주는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