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항암, 점점 지쳐가는 엄마와 나. 우연히 들른 어느 카페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이가 먼저 채팅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는 다짜고짜 나에게 집의 주소를 물었다. 익일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꼬깃꼬깃 정성스럽게 신문으로 감싼 포장과 함께 이버멕틴, 메벤다졸, 알로홀, 사탕이 담겨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베푸는 인정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그의 주소가 적힌 택배 상자를 고이 간직해 두고 있다. 어서 일을 구해야 할 것 같다. 갚아야 할 마음의 빗이 가득 쌓이고 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에게 찾아온 병으로 세상이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하던 때도 있었다. 오랜 항암으로 지치기 시작하던 때는 모두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항암치료로 원발 암이 터져나가서 한쪽 팔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엄마, 그런 불편한 몸의 엄마는 오늘도 아침부터 복작거리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하나'를 만들어냈다. 바로 토스트라고 보기도, 샌드위치라고 보기도 힘든 '그것'이다. 아주 적절한 재료의 선택, 아마도 계란, 참치, 마요네즈, 양파, 당근 등의 속 재료가 들어간, 냉장고를 옮겨 닮은 '그 맛'이다. 아주 맛있다.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어서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그 맛이기 때문에, 돈을 내고도 살 수도 없는 '그 맛'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냉장고 맛'이 아니다. 그 맛이다. 나는 한입에 다 털어먹은 반면, 조금씩 오물조물거리던 엄마는 이내 한마디를 내뱉었다. "맵다." 오랜 항암으로 맵다, 달다, 짜다, 시다, 쓰다, 등의 기본이 ..
오늘도, 하루 하나의 추억거리 만들기. 엄마와 나, 부쩍 간식거리에 들어가는 돈이 늘었다. 잘 튀겨진 핫도그. 하지만, 정작 엄마는 핫도그를 단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이미 병원이 준 여명을 뛰어넘은 엄마는, 너무 가쁜 숨을 쉬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파?" 하지만, 늘 엄마의 대답은 같았다. "안 아파." 도대체 엄마는 얼마나 아픈 것일까. 유방암 4기, 간-뼈 전이, 전신원격 전이, 수술, 방사선치료가 안 되는 우리 엄마. 병원이 선고한 여명은, 첫 내원 당시는 약 반년, 항암이 잘 진행되던 당시는 길어야 최대 1년 반. 이미 병원이 선고한 여명을 뛰어넘은 엄마는 오늘도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한다.
지난 약 2년간, 엄마의 병수발하면서, 머리에 이상이 찾아왔다. 첫 시작은, 어지럼증이었다. 걸음걸이가 부정확해지기 시작했고, 요즘은 머리가 쥐가 난 것 같이 따끔거리고, 뒷목이 뻐근하고, 눈을 들어올리기 힘들고, 눈동자가 진동하는 것 같고, 초점이 안 맞아서 제대로 글을 읽을 수 없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찍어서 따라가야 스마트폰의 문자를 겨우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혀가 굳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발음이 부정확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병수발을 하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시게 되었고, 요즘은 마지막 기억이 없다. 엄마는 내가 자주 쓰러진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내가 뇌종양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본 뇌종양의 초기 증상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 형편에 한 집에 두 명의 암환자는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