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컵의 소주로 하루의 시름을 달래던 엄마는 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서는 자신의 등과 허리 등에 파스를 붙여 달라고 했다. 2018년의 5월, 갑자기 엄마가 사라져 버렸다. 약 일주일여만에 나타난 엄마의 몸이 이상했다. 분명히 겨드랑이 쪽에 참외 한 알만한 무엇이 보였다.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안방에 들어간 엄마는 조용히 병원에서 갖고 온 책자를 꺼내놓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손에서 책자를 빼앗았다. 암센터에서 준 책자였다. 엄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암이라고..." 곧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엄마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세상에 나와서 눈물이 말라버렸다고 했던 엄마, 그날, 나는 오랜만에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늦었지만, 엄마에게 경..
아침부터 엄마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절반은 내다 버린 짐.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성에 차지 않은 듯,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내다 버리고 있다. 엄마가 내다 버리는 짐 속에서 굴러나온 카세트 플레이어, 엄마와의 추억이 굴러 나왔다. 아마도 중학교에 올라가던 해, 나를 잠실의 롯데 백화점으로 데리고 간 엄마는, 열심히 공부하라면서 소니의 워크맨을 사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카세트 플레이어로, 노래만 들었을 뿐, 공부는 하지 않았다. 워크맨, 이제는 낡은 시대의 유물이지만, 아직 나는 이 추억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갖고 돌아와서 내 품에 안았다. 없는 형편에도 자식에게만은 늘 관대했던 엄마, 나는 그런 엄마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지 돌아봤다.
아피니토, 아로마신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 오늘도 한입에 약을 털어 넣은 엄마는 조용히 침상의 위에 누워서는, 천정만 쳐다보고 있다. 엄마는 지금 사용하는 약을 먹으면, 약한 피부가 터져나가는 부작용 외에도, 전신이 불타는 것 같고, 하늘이 붕붕 도는 것 같다고 한다. 입랜스와 페마라의 사용이 중지되었던 때, 그 짧은 단 1개월 외에는, 지난 2년간,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다. 제발 엄마가 조금만 더 인내로 버티어 주었으면 좋겠다. 약이 잘 듣는다면, 암이 줄어든다면, 이제는 체력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 소망하는 모든 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본다.
내 서른 여덟 번째의 생일. 어서 엄마가 나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적으로, 내 서른 여덟 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뱃속에서 10개월, 그리고 세상밖으로 나와서 서른 여덟해,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지 모르겠다. 어서 건축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오래 할 수 있고, 안정적인 내 사업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제 나이에 쫓긴다. 엄마의 작은 몸이 항암에 잘 견디어 주는 모습이, 내게는 가장 큰 감동이고, 선물이다.
심각한 림프 부종으로 팔을 접었다 펴는 것도 힘들어하는 엄마는 오늘도 같은 말만 반복했다. "괜찮다." 이제는 늘 같은 말만 반복해 오던 엄마의 체력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진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 엄마는 한동안 망설이는 눈치였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갈까."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뚱뒤뚱 꽃게처럼 옆으로 한 걸음씩을 내디뎌서 아슬아슬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한없는 눈물을 쏟았다. 이 작은 소원 하나를 들어줄 수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었다. 주치의께서는 첫 내원 당시의 여명을 약 반년으로, 항암이 잘 진행되던 때는 길어야 최대한 1년 반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씀하셨다. 항암으로 약 23개월째, 엄마는 조금..